2012년 10월 30일 화요일

위키피디아를 통해 본 일본의 독도에 대한 생각 2



이 포스트은 '위키피디아를 통해 본 일본의 독도에 대한 생각 1' 에 계속 된 내용입니다.

이전 내용 링크 :

위키피디아를 본 일본의 독도에 대한 생각 1 보기






일한양국의 분쟁의 평화적처리에 대한 교환공문

  또한, 이 조약체결에 동반한 '일한 양국 분쟁의 평화적 처리에 대한 교환공문' 을 주고받아, 그에 외무부장관 이동원의 서명에 따른 한국측의 서간으로


양국정부는 별다른 합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양국간의 분쟁은 먼저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하는 것으로 하고, 이것에 의해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 양국정부가 합의한 절차에 따라, 중재로 해결을 한다.
 라고 있지만, 이후 한국 정부의 대응은 이 문서에 반하는 행동이다.


한국군에 의한 일본어민 살해와 일본어선 나포

  1952년, 이승만 라인의 선언으로부터 1965년(쇼와40년) 일한기본조약 체결까지 한국군은, 라인을 넘어왔다는 이유로 일본어선 328척을 나포하고, 일본인 44명을 사상(이중 5명사망)하여, 3929명을 억류했다. 한국측, 해상보안청 순시선의 총격 등의 사건은 15건에 이르고, 16척이 공격당했다.

  1953년(쇼와28년) 1월 12일, 한국정부가 '이승만라인' 내에서 어획한 일본어선의 철저나포지시 이후, 일본어선의 나포와 총격사건이 잇달아, 일본 어업종사자 중 사상자가 다수 나오게 되었다. 같은 해 2월 24일 제1다이호오마루(第一大邦丸)호 사건이 발생하여, 제주도 부근에서 동 선박의 어로장이 한국측의 총격을 받아 사망, 또한 일본인 어부인 세토시게츠구 츠카사(瀬戸重次郎)가 살해당했다.

  같은 해 4월 20일에는 한국의 독도의용수비대가 다케시마에 처음으로 주둔. 6월 24일 일본의 수산고교의 선박이 독도의용수비대에 나포되었다. 6월 27일에 일본의 해상보안청과 시마네현이 다케시마 조사를 이행하고, '일본 시마네현 오키군 고카무라' 영토표식을 세우고, 다케시마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어민 6명을 퇴거시켰다. 그러자 7월 12일에 다케시마에 상륙해 있던 한국의 독도수비대가 일본의 해상보안 순시선 - 헤쿠라へくら에 90미터의 거리에서 기관총탄 200발을 발싸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한국은 다케시마의 무장화를 진행하여, 일본 어선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본정부는 이러한 한국의 다케시마를 무장화하는 움직임에 항의하였지만, 한국측은 '내정간섭' 이라 하며 듣지 아니하였다.

  더욱이 당시 한국에는 나포의 법적근거가 있는 어업자원보호법이 시행되어 있지않아, 일본어선나포는 국제법이나 한국국내법에도 비합법적인 행위였다. 이러한 한국의 행위에 대하여, 일본의 수산청은 "타국의 유사한 사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 라고 평하였다.

  또한, 한국이승만 체제아래 행하여졌던, 관련된 행위를 1960년 주일미국대사 더클라스 맥아서 2세(Douglas MacArthur II)는 국무성으로의 기밀전문에서 '국제적인 품행과 도덕등의 기본원리를 무시한 실력행사, 즉 해적행위' 라고 표현하여, '일본인은 이승만의 점령주의적 수단에 고통받고있다' 라고 표현하였다.

현재 점령 상황
  한국은 일본과의 영토문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일발적으로 대화 거절을 계속하여, 현재도 군에 준하는 장비를 가진 한국국가경찰 경북경찰청 독도경비대의 무장경찰관 40명과, 등대관리를 위한 해양수산부 직원 3명을 상주하고 있다. 또한 한국해군과 해양경찰청이 그 '영해' 해역을 상시 무장감시하고, 일본측의 접근을 엄중히 경계하고 있다. 그에 일본의 해상보안청의 선박과 어선은 이 섬의 영해내에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계속 되어, 일본정부의 세번째 항의에도 상관하지 않고, 등대, 헬리콥터 착륙지, 레이더, 선박의 접안장, 경비대 숙사등을 설치, 서도에는 어민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 이미 건설된 주요시설
    • 동도 - 경비대숙소, 등대, 헬리콥터 착륙지, 기상관측대, 선박접안시설, 송수신탑
    • 서도 - 어민숙소
  1991년부터는 영유의 기정사실화 하기위해 김성도, 김신열 부부의 거주를 인정하여, 독도리산20번지로 하였다.

  2005년에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에 반발하여, 한국정부는 한국인관광객이 독도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금지를 해제하고, 3월 28일에는 관광객들이 처음으로 독도에 상륙하였다. 울릉도로 부터의 관광선이 있어서, 비정기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배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수륙양용기에 따른 항공로를 개설할 계획도 있다. 외무성은 이러한 수단에 따른 도항하는 방법은 "한국에의한 다케시마의 불법점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 중에, 우리 국민이 한국의 출입국수속에 따라 독도에 들어가는 것은 당해국민이 다케시마를 두고 한국측 관할하에 들어가는 것을 인정했다던가, 다케시마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인정했다던가 하는 오해를 줄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독도에 가지않도록, 국민여러분은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라고 하고 있다.

  2005년 4월에는 한국인의 결혼식이 처음으로 다케시마에서 열린 것 외에, 독도 방어를 위해 992명의 한국인이 독도에 호적을 두고 있다.

다케시마의 어업경제가치와 배타적 경제수역문제
  다케시마는 가파른 암석으로 된 산으로 면적도 좁고 섬 자체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지만, 주위의 광활한 배타적 경제수역(EZZ)의 어업권과 해저자원의 이익등이 존재한다. 현재 이 섬의 배타적경제수역 내에서 석유와같은 해저자원은 특별히 발견되고 있지않고, 지금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어업권이다. 다케시마의 주변해역의 경제가치는 1952년의 일본의 수산청에 따르면, 130억엔(이승만 라인 내에서), 1974년 시마네현 어업조합의 산출에서는 연간 어획고가 76억엔, 2010년의 한국의 산출에는 연간 11조 5842억원(약 8600억엔) 이다. 

점령의 목적으로 보여지는 어업관할권
  애초에 1952년 이승만라인의 목적은 어장으로써의 이익이었다 라고도 여겨져, 한국에 의한 근해어업의 독점이 목적이었다고 생각된다. 한국은 이승만라인을 설정하여 다케시마 해역의 어업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그 당시의 해양법으로 보더라도 위법이었다.

국제해양법으로 본 한국의 부당성
  당시 '수역은 타국과 합의된 규정에 따라 통제관리된다.' 라고한, 1945년 트루만(Harry S. Truman)선언 이후, 아르헨티나, 페루와 같은 남미의 국가들도 자국민에따른 배타적인 어업독점권을 일방적으로 설정하여, 국제문제가 되어있다. 영국은 3해리를 넘는 수역의 배타적관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1948년에 칠레, 페루에 항의하고, 프랑스도 1951년에 멕시코, 페루에 "일방적 선언에 따른 공해는 주권을 확장하고, 타 국가들의 권리를 침범하여서는 안된다" 라 하고, 또한 1952년에는 영미 공동으로 칠레, 에콰도르, 페루의 공동선언에 항의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항의에도 상관하지않고, 1954년에 페루는 파나마 선적선을 나포하고, 에콰도르는 1955년에 미국의 어선에 발포하고 나포하는 정황이었다.

  1951년 국제법 위원회 초안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떠한 수역도 어업을 하려고 하는 타국민을 배재하여서는 안된다.' 라고 배타적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고, 또한 '관할권을 관세징수와 위생목적의 것이므로 연안국이 어업을 독점하기 위해서의 관할권을 인정할 수 없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후에 일한회담에서 어업관할권을 국제해양법의 관점으로 부정하는 일본에 대하여, 한국측은 반론하지 못하였다.

일한어업협정 이후
  1965년 구일한어업협정에는 다케시마에 대하여는 보류되었다. 1980년 전후에는 한국어선이 산인(山陰) 연안과 훗카이도 근해까지 어획(밀어)하고, 일본의 어민들과 법적분쟁까지 일어났다. 시마네현의 시이라어어선(シイラ漁漁船)은 35통(統) 8통까지 격감했다.

  1996년에 일한양국은 해양법에관한 국제연합조약을 비준하였다.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일한어업협정의 체결교섭을 개시하고, 양국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잠정수역을 설정하고, 이 해역에서 쌍방의 어획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일본측의 배려에의해, 일본이 대범하게 양보한 잠정수역은아 이거 머라는거야 정말-_-, 일한 공동으로 이용하는 협정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한국어선이 어장을 독점하고, 일본어선이 조업을 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 되고있다. 게다가 한국어선은 일본측 EEZ까지 칩입하는 등 불법어업행위를 하고, 또한 다케시마의 주변해역에는 한국군이 빈번하게 감시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다케시마 근해의 해저지명을 명명하고, 더욱이 해저지하자원에 관한 조사활동을 하여, 배타적경제수역문제가 재연되고, EEZ확정교섭을 재개하여 팽팽히 맞서고 있다.

(3편에 계속)

블로그 보관함